조선시대 최고의 특수부대 착호군
- 이슈
- 2018. 5. 17. 01:00
옛날에는 깊은 산중에서 번화한 서울 도성 한복판에도 호랑이가 출몰해서 사람을 습격하는 두려운 대상이었다고 해요.. 조선시대에 농본주의가 국가 이념이고 전국적으로 농지개간과 양전사업이 이뤄지면서 야생 호랑이와 만나 피해를 겪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는 부대가 만들어 졌는데요.. 조선시대 착호군 또는 갑사라는 직업군인이었다고 해요.. 의흥위 소속으로 5위의 중심병력을 이루는 정예부대로 투구, 갑옷에 각종 무기로 무장을 했어요..
착호군들은 용맹하고 무예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따로 선발했고 지속적인 무예훈련을 견뎌낸 정예병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어요. 호랑이가 나타나면 끝까지 추격해 호랑이를 사냥했습니다. 백성들의 칭송을 받고 국왕이 도성을 벗어나 원행에 오르거나 하면 최측근거리에 밀착경호를 담당했습니다.
착호군은 뽑히더라도 선임들과 창이나 활쏘기 겨루기를 통과해야만 인정받았고 착호군의 자부심은 커졌다고 합니다. 점점 수도 증가해서 단독전투를 치를 수 있는 병력으로 확대되면서 특권의식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도성을 활보하며 으스대거나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혹은 착호군을 악용해 일반사람이 지방관아의 군마를 빌려 호랑이 사냥을 나서는 일이 생기기도 했어요. 호랑이를 유인하기 위해 착호군은 주변 마을의 사람들을 강제로 몰이꾼으로 동원하고 야영을 빙자해 대접을 받는 사례도 발생했습니다.
호랑이가 숨어 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기르던 개를 산속에 묶어 놓고 기다려 마을에 개가 남아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착호군은 호랑이를 잡는것 자체가 전투이자 훈련이므로 주수입원이었고 호랑이를 잡은 마릿수와 화살을 누가 맞혔는지를 구분해서 포상금을 지급했기에 착호군은 재력이 어느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거기다가 호랑이의 크기에 따라 포상금의 액수가 몇배로 뛰었고 호랑이를 잡아 바치는 노비는 신분을 평민으로 올리고 평민의 경우 평생 세금을 모두 면제해 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호랑이 잡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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