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6.25 전쟁에 참전한 속내는?

일본이 6.25 전쟁에 참전한 속내는?



일본이 6.25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일본이 한국전 참전으로 재식민지화 계획'


원산항의 기뢰제거, 인천상륙작전 분비, 간호병파견, 731부대 요원에 의한 세균전 지원과 원폭투하 계획까지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극우 세력이 한국전쟁 참전의 대가로 한반도의 재식민지화를 미국에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한국전쟁 참여 대가로 경제부흥과 자위대 창설의 기회를 얻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전범국가에서 주권국가로 인정 받았다고 해요.


군사력 폐지 및 비무장화를 규정한 평화헌법을 통해 어떤 전쟁도 참여하지 않겠다던 일본의 한국전 참여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입니다. 




'한국전쟁은 일본의 경제 회복 발판'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경제 회복의 발판으로 삼았고 일본 재군비의 기회를 제공경찰예비대가 찰설되고 해상경비대가 발족하고 일본 자위대와 해상자위대의 발판이 됩니다. 


한국은 전승국에서 제외되고 재일교포문제 등의 보상처리를 해결하지 못했고 강화조약 체결과정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로 표기됨으로서 영토분쟁의 시작이 된것이라고 합니다. 




'원산상륙작전에 일본군 동원'


1950년 10월 연합국 최고 사령부는 원산상륙작전에 필요한 기뢰제거 작업에 참여할 것을 일본에 요구했고 25척의 소해정과 1200명의 소해대원을 원산, 흥남, 해주, 군산, 인천, 남포지역에서 소해 작업에 참여했다고 해요..


한국에서 전사한 일본군은 비밀로 부쳐지고 일본재건에 도움을 주었으며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캐논기관에 일본인 참여'


연합국최고 사령부 첩보기관인 캐논기관은 캐논 육군 소령의 지휘하에 전쟁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는 정보, 첩보 부대로 북한, 만주, 중국 지역에 침투해 한국지리에 밝고 한국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일본인들의 참여가 확인 됐다고 하며 전쟁에 사용되던 지도가 일본인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38선 부근에 알수없는 유행성 출혈열 발병'



1951년 겨울 38선 부근에서 유행성 출혈열이 확산되었고 발병한데에 의문점이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731부대의 세균연구 성과를 받아들여 이시이 시로, 기타노 마사지, 나이토 료이치와 같은 전범재판에서 살려주고 한국전쟁기간 동안 계속 세균을 연구하는데 카사하하 시로는 406부대에서 계속 유행성 출혈열을 연구했다고 해요.


731부대 연구진은 혈액은행을 설립한국전쟁에 필요한 혈액의 공급을 맡았는데 나이토 료이치는 한국전쟁에서 혈액을 팔아 챙긴돈으로 녹십자의학회사를 설립하고 80년대 일본 에이즈 사건의 주범이라고 합니다. 


혈액건조기술을 이용해 싼값에 혈액을 사서 미군에 비싼 값에 팔아 부를 축적하고 재기에 성공한 731부대 대원들.




'인천상륙작전의 알류미늄 사다리'



인천 상륙작전에 일본이 없이는 계획할 수 없었다고.. 상륙작전 한달전에 일본 정보요원들이 인천의 모든 정보를 수집해 계획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급조된 알류미늄 사다리가 성공요인 이었다고 하며 60개의 사다리를 만들어 공급했다고 해요.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된 일본인 선원과 항만노동자들 3000명은 경제난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 흥남지역에 핵무기 개발 의혹'


일본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인 1945년 원폭개발에 필요한 전력량과 우라늄, 컹스턴 등의 광석물이 풍부하고 질소비료공장 시설을 갖춘 흥남 지역에서 핵무기 개발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해요..


한국전쟁 당시 흥남지역에 원자탄 투여까지 검토했으나 트루만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고 흥남지역에 집중 투하된 미사일은 일본의 핵개발 시설을 폭파하기 위한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기회로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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