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레핀의 그림 모델들의 죽음

일리야 레핀의 그림 모델들의 죽음

1888년 러시아 5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 한그림의 모습과 같았다. '이반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이라는 그림이었다. 

 

 

러시아 화가 일리야 레핀의 작품이었다. 이 그림은 16세기 러시아를 통치하던 폭군 이반4세가 아들을 직접 살해한 사실을 그린 역사화 였던 것이다.

 

 

 

 

 

 

이 그림이 공개 되고 3년 후에 한 남자가 투신자살을 시도 하게 되는데 그는 33세의 소설가 프세볼로트 가르신 이었다. 5일만에 사망하게 된다. 이에 사람들은 일리야 레핀의 저주라고 말한다. 

 

 

1881년 1월 러시아의 작가 알렉세이 피셈스키의 초상화를 그린다. 몇일 뒤 59세의 나이로 급사한다. 그로 부터 한달 뒤 오페라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르그시키의 초상화를 그렸다.

 

 

 

 

 

 

초상화가 완성된 후 23일 뒤에 사망했다. 외과 의사 니콜라이 피로고프의 초상화를 그린 뒤 사망한다. 사람들은 "일리야가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이 저주를 받는다." 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일리야 레핀은 '이반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 이 그림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아 힘들어 하던 그는 '프세볼로트 가르신' 사망한 남자를 모델로 쓴 것이었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1901년 러시아 정부의 요구로 니콜라이 2세와 국무회의를 하는 모습을 그려 줄 것을 의뢰 받았고 1903년 완성되었고 얼마 후 러시아 대혁명이 일어나 그림속의 모델들이 큰화를 입었고 사람들은 그의 그림 모델이 되면 불운이 찾아 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 모델이 된 사람들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라며 우연일 뿐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1910년 당시의 총리 표트르 스톨리핀은 터무니 없는 소문이라며 일리야에게 초상화를 맡겼고 초상화가 완성되자 한 혁명가에 의해 총에 맞아 사망을 한다. 그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 이름을 떨쳤고 그의 이름을 딴 지명이 생길 정도 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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